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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당방위 법리는 이미 법의 이름으로 시민을 억압하는 기형적 제도로 전락했다.

스스로를 지키려는 최소한의 본능조차 법정에서 범죄로 둔갑하는 현실을 두고, 과연 이것이 ‘정의’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당방위는 형법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 중 하나다.

국가가 모든 순간 개인을 보호할 수 없기에, 긴급한 상황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이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대법원에서 정당방위가 인정된 사례가 손에 꼽을 정도라는 사실은, 제도가 사실상 사문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법전에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권리, 그것은 권리가 아니라 기만이다.


더 심각한 것은 판단 기준의 왜곡이다.

자동차 사고에서는 과실 비율을 세밀하게 따진다.

7:3, 8:2처럼 책임을 분할하는 것이 당연한 절차다.

그런데 폭행 사건에서는 이 합리적 접근이 갑자기 사라진다.

명백히 공격을 당한 상황에서도 ‘쌍방폭행’이라는 이름으로 동일선상에 묶어버린다.

먼저 때린 자와 방어한 자를 같은 가해자로 취급하는 이 기계적 균형은, 정의가 아니라 행정 편의주의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제도의 문제는 추상적 비판에 그치지 않는다.

실제로 자신의 집에 침입한 강도를 상대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주먹으로 두 차례 반격한 시민이 ‘과잉 대응’으로 판단된 사례는, 이 법리가 얼마나 현실 감각을 상실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생존이 걸린 순간에 ‘적정한 방어 횟수’를 계산하라는 요구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사후적 시선으로 이를 재단하며, 결과론적 기준을 들이댄다.

이는 법이 인간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이쯤 되면 문제는 단순한 법리 해석을 넘어선다. 신뢰의 문제다.

시민의 생존 본능과 상식을 외면하는 판단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과연 시민들이 현재의 사법 시스템을 신뢰할 수 있는가.

법원이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고 있는 구조라면, 그 판단 권한을 독점하도록 방치하는 것은 더 이상 정당화되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는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정당방위 여부에 대한 판단은 반드시 시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되도록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황이 무엇인지, 그 상황에서 어떤 대응이 ‘상식적인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다양한 시민의 경험과 감각이 반영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절차 변경이 아니라, 법 판단의 기준을 현실로 되돌리는 과정이다.


전문 법관의 법리적 판단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현실과 괴리된 해석이 반복되는 상황에서는, 시민의 상식이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

특히 정당방위처럼 인간의 본능과 직결된 사안에서는 더욱 그렇다.

법이 인간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점에서 시민참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당방위 판단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것은 사법부에 대한 불신의 표현이자 동시에 회복의 기회다.

폐쇄된 구조 속에서 반복되는 왜곡을 끊어내고, 법이 실제 삶과 호흡하도록 만드는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시민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생존을 누가 판단할 것인가?" 그 답이 여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소수의 해석에 머문다면, 법은 더 이상 정의의 도구라 부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그 판단을 시민의 손으로 되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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