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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그 권한을 누구보다 신중하게 행사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사람을 체포하고, 검사가 기소하고, 법원이 유죄를 선고하는 과정에 막대한 권한이 부여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깨지는 순간이 있다.

죄 없는 사람이 범인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고, 수년 또는 수십 년 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그때 국민은 국가에 묻는다. 당신들이 빼앗아 간 내 삶은 누가 돌려줄 것인가?

 

안타깝게도 우리 제도는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고 있다.

억울하게 수감된 사람에게 진범 검거는 해방이 아니다. 새로운 시작일 뿐이다.

진범이 잡혔다고 자동으로 석방되는 것도 아니고, 국가가 먼저 나서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아니다.

피해자는 다시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 국가가 저지른 오류를 국가가 스스로 시정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또다시 법정 문을 두드려야 하는 구조다.

이것이 과연 정상적인 국가의 모습인가?

 

더 기가 막힌 일은 그다음에 벌어진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아도 국가는 충분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형사보상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과연 인간의 자유를 빼앗은 대가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인지 의문이다.

국가는 한 사람의 청춘을 빼앗는다. 직장을 잃게 만든다. 승진 기회를 없앤다. 사업을 무너뜨린다.

가족을 해체시킨다. 자녀의 성장 과정을 앗아간다. 부모의 임종조차 지키지 못하게 만든다. 사회적 명예를 짓밟고 경제적 신용을 파괴한다.

그러나 국가가 계산하는 것은 감옥에 있었던 날짜 수뿐이다.

한 인간의 삶이 붕괴된 대가는 계산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방식이다.

형사보상으로 해결되지 않는 손해를 배상받으려면 피해자는 다시 국가배상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여기서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국가기관의 고의 또는 과실까지 입증해야 한다.

국가가 만든 피해인데 왜 피해자가 국가의 잘못을 증명해야 하는가?

 

국민은 수사 기록을 갖고 있지 않다. 수사 과정에 참여하지도 않았다. 국가 권력의 내부 의사결정을 알 수도 없다.

그런데도 법은 피해자에게 입증 책임을 떠넘긴다.

국가의 실수로 인생이 무너진 사람에게 "국가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네가 증명해 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는 법률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책임에 대한 철학의 문제다.

 

선진 민주국가들은 사법 오류를 단순한 행정 착오로 보지 않는다.

국가 권력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 중대한 실패로 인식한다.

그래서 보상과 복권, 사회 복귀 지원을 국가 책임의 연장선에서 논의한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에게 무죄 판결문 한 장을 내밀고, 형식적인 보상 절차를 안내한 뒤, 다시 국가배상 소송을 하라고 말한다.

국가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국가가 아니라 피해자가 움직여야 한다.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 피해자가 싸워야 한다.

잘못은 국가가 했는데 책임은 피해자가 지는 구조다.

 

사법 정의는 유죄 판결의 숫자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다.

무고한 시민을 얼마나 보호하느냐로 평가된다.

국가가 범인을 놓치는 것보다 더 두려워해야 할 일은 죄 없는 사람을 범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국가는 최소한 피해 회복 과정에서만큼은 변명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진범이 밝혀졌는데도 재심을 기다려야 하는 현실, 무죄를 받아도 삶의 파괴는 보상받지 못하는 현실, 국가의 잘못을 피해자가 입증해야 하는 현실은 정의국가의 모습이라 보기 어렵다.

국가가 국민의 자유를 빼앗는 데는 하루도 걸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데는 수년, 수십 년이 걸린다.

이것은 사법제도의 권위가 아니라 무책임의 증거다.

 

국민은 국가에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든 제도인 이상 오류는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은 국가가 자신의 오류에 책임질 것을 요구한다.

 

지금의 제도는 잘못을 인정하는 데 인색하고, 책임지는 데 더 인색하다.

 

억울한 옥살이는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국가가 저지른 실패다.

그리고 국가가 만든 실패의 비용을 피해자에게 떠넘기는 사회는 결코 정의로운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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