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가장 무서운 적은 야당이 아니라 맹목적인 지지자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은 어느 나라에나 있고, 잘못된 정책을 내놓는 정치인도 어느 나라에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정치인의 잘못을 지적해야 할 지지자들이 오히려 그 잘못을 대신 변명하고 방어한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을 지지하는 이유는 간단해야 한다.
그 사람이 더 좋은 정책을 제시하고, 더 나은 국가를 만들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지자는 정치인의 정책을 가장 먼저 검증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가장 먼저 비판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우리 편 정치인이 잘못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라고 변명하고, 상대편 정치인이 같은 행동을 하면 “저 인간들은 원래 그렇다”고 비난한다.
우리 편이 같은 정책을 추진하면 개혁이고, 상대편이 추진하면 포퓰리즘이다.
우리 편 정치인의 거짓말은 실수이고, 상대편 정치인의 실수는 거짓말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정치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정치인의 소속 정당이 되었는가?
더 황당한 것은 같은 정책을 놓고도 누가 주장하느냐에 따라 찬반이 뒤집힌다는 것이다.
A정당이 주장할 때는 절대로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이 정권이 바뀌어 B정당이 똑같은 정책을 주장하면 박수를 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진영에 대한 충성심일 뿐이다.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과 정치인을 숭배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지지자는 정치인의 하수인이 아니다.
정치인의 주장을 대신 홍보하는 사람도 아니며, 정치인의 잘못을 대신 변명해주는 변호사도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정치인을 지지하기 때문에 정치인을 더 엄격하게 감시해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치인이 잘못된 정책을 내놓았다면 내가 먼저 “그건 잘못됐다”고 말해야 한다.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국민에게 불리한 법안을 추진한다면 내가 먼저 반대해야 한다.
그래야 정치인이 국민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지지자들이 정치인을 감시하지 않고 정치인의 주장을 대신 방어하기 시작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정치인은 무엇을 해도 자신의 지지층이 감싸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면 정책을 잘 만드는 것보다 지지층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국가 전체에 도움이 되는 정책보다 상대 진영을 공격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인 정치 수단이 된다.
결국 정치인은 국민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진영을 결집시키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
이런 정치에서는 정책의 디테일도 사라진다.
“이 정책이 정말 좋은 정책인가?”가 아니라 “우리 편인가, 상대편인가?”만 남기 때문이다.
세금 문제를 보자.
근로소득자는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급여 지급 단계에서 원천징수가 이루어진다.
반면 사업소득이나 기타 소득은 소득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실제 비용과 사업 구조 등을 반영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직장인 세금을 깎자”거나 “자영업자 세금을 올리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왜 근로소득은 이렇게 투명하게 과세되는지, 소득을 얻기 위해 실제로 발생하는 비용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소득을 조절할 수 있는 재량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각 소득계층의 실질적인 세부담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야 한다.
가령 누군가 근로소득자의 과세표준을 낮춰 실질적인 세부담을 조정하자는 정책을 내놓았다고 하자.
그때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여당이냐 야당이냐가 아니다.
정말 근로소득의 투명성과 비용구조를 고려하면 그런 제도가 필요한가? 세수 감소는 감당할 수 있는가? 다른 소득과 비교했을 때 형평성은 개선되는가?
이것을 따져야 한다.
그런데 실제 정치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진다.
여당이 주장하면 야당과 지지자들은 “부자 감세”라고 공격하고, 야당이 주장하면 여당과 지지자들은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한다.
반대로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과거에 반대했던 논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뒤집기도 한다.
정책의 내용은 그대로인데 정치인의 소속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다.
세금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진영의 구호가 아니라 숫자와 논리다.
누구의 세금을 얼마나 줄이고, 누구에게 얼마나 부담을 추가하며, 그 결과 세수와 형평성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따져야 한다.
그것이 정책의 디테일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이런 복잡한 논쟁보다 “우리 당이 주장했느냐, 저 당이 주장했느냐”가 훨씬 쉽게 소비된다.
그래서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인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불편한 지지자다.
잘못하면 바로 비판하고, 공약을 지키지 않으면 따지고, 정책의 숫자가 틀리면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편 정치인이 부패하면 상대편보다 더 강하게 비판하는 지지자 말이다.
그런 지지자가 많아질수록 정치인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
반대로 무슨 짓을 해도 박수를 보내는 지지자가 많아질수록 정치인은 국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정치인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야당의 공격이 아니다.
야당은 원래 공격한다.
정치인이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정치에서는 이상하게도 지지자들이 정치인을 감시하기보다 정치인을 대신 싸워준다.
정치인의 발언을 대신 해명하고, 정책의 허점을 대신 변명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적으로 돌린다.
그러면서 상대 진영의 지지자들에게는 “왜 그렇게 맹목적이냐”고 비웃는다.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자신이 비판하던 상대 진영의 맹목적인 지지 행태를 그대로 반복하면서, 자신만은 합리적인 유권자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보수라면 보수 정치인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하고, 진보라면 진보 정치인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진영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욱 자유롭게 잘한 것은 잘했다고 말하고,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인의 이름보다 정책을 보고, 정당의 색깔보다 결과를 보고, 정치인의 말보다 실제 행동을 봐야 한다.
정치인은 우리의 주인이 아니다. 우리가 고용한 공직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국민이 해야 할 일은 정치인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는 것이다.
좋은 정책을 내놓으면 박수를 보내고, 잘못된 정책을 내놓으면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단 하나여야 한다.
“누가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했는가.”
대한민국 정치가 정말 바뀌기를 원한다면 정치인부터 바꾸려고 하기 전에 정치인을 바라보는 유권자의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정치인을 무조건 믿는 국민은 결국 정치인에게 이용당한다.
그러나 정치인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하는 국민은 정치인을 움직이게 만든다.
정치의 주인은 정치인이 아니다.
국민이다.
그 사실을 정치인보다 국민이 먼저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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