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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공동체의 최소한의 약속이다.

그 약속은 명확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특히 약자를 보호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입법을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풍경이 펼쳐진다.

규정은 있는 듯 보이지만, 정작 핵심 순간에는 빠져나갈 통로가 교묘하게 열려 있다.

그 결과 법은 원칙이 아니라 선택지가 되고, 책임은 의무가 아니라 협상의 대상이 된다.


학교폭력 대응을 예로 들어보자.

가해자가 '자발적 전학'이라는 형식적 조치를 취하거나, 피해자가 원치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워 생활기록부 기재를 회피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다면, 이는 제도의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가해 행위의 객관적 사실과 그에 따른 공적 기록은 별개의 문제여야 한다.

그런데도 기록 자체를 유예하거나 배제할 수 있는 설계는, 결과적으로 책임의 외주화를 가능하게 한다.

피해자는 2차 피해를 우려해 침묵을 강요받고, 가해자는 '조용한 처리'라는 이름으로 이력을 지워버린다. 이것이 과연 정의로운가?


문제의 본질은 '재량'이라는 이름으로 남겨둔 예외 조항들이다.

재량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재량이 이해관계자에게 유리하게 남용될 수 있는 구조라면, 그것은 재량이 아니라 특권이다.

특히 교육, 안전, 인권처럼 공익성이 높은 영역에서의 예외는 더 엄격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빠져나갈 구멍'은 입법 과정이 누구의 편에 서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이러한 허점이 단순한 설계 미비가 아니라 의도된 결과라는 비판까지 제기된다.

즉, 법을 만드는 이들이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위해 은밀한 '탈출로'를 남겨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공적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이들이 사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법의 틈을 설계했다면, 이는 입법이 아니라 자기보호 장치의 구축에 가깝다.

국민이 법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은 이런 순간에 가장 처참하게 무너진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허점을 ‘현실적 유연성’이라 포장한다.

그러나 유연성은 책임을 약화시키는 장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런 식의 예외 설계는 힘 있는 이들에게는 방패가 되고, 힘 없는 이들에게는 족쇄가 되는 이중 구조를 만든다.

법의 이름으로 특권이 작동하는 순간, 정의는 공허한 수사가 된다.


입법의 기본 원칙은 간단하다.

첫째, 책임은 행위에 따라 일관되게 부과되어야 한다.

둘째, 기록은 사실에 기초해 공적으로 남아야 한다.

셋째, 예외는 최소화하고, 불가피한 경우에도 남용 방지 장치를 촘촘히 두어야 한다. 넷째,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영역에서는 외부 검증과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

이 네 가지가 지켜지지 않는 한, 어떤 법도 공정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국회는 더 이상 '그럴듯한 문구'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법의 문장 하나, 단서 조항 하나가 현장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끝까지 추적하고, 허점이 드러나면 즉시 보완해야 한다.

특히 학교폭력과 같은 사안에서는 가해자 중심의 '조용한 정리'가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재발 방지라는 목적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생활기록부 기재의 일관성, 자발적 전학의 악용 방지, 합의 여부와 무관한 공적 기록 유지 등은 최소한의 출발점이다.


법은 권력자를 위한 안전장치가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한 기준선이다.

그 기준선에 구멍이 뚫려 있다면, 피해는 언제나 약한 쪽으로 쏠린다.

입법자는 그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책임을 회피할 여지를 남기는 법이 아니라, 책임을 분명히 하는 법을 만들라.

그것이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권한의 이유이며, 지금 당장 회복해야 할 신뢰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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