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는 평생 11살로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23년을 돌려받았다
법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가해자의 사정을 끝없이 찾아내기 위해서인가?
최근 한 강력범죄 사건의 판결을 접한 국민들이 던지는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피해자는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렸다.
과다출혈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그 대가는 참혹했다.
심각한 뇌손상.
그리고 지능은 11세 수준에 머물게 되었다.
피해자는 앞으로도 평생 그 상태로 살아가야 한다.
원래의 삶은 사라졌다.
꿈도, 미래도, 직업도, 독립적인 삶도 사실상 빼앗겼다.
살아는 있지만 더 이상 예전의 삶을 살 수 없다.
한 인간의 인생이 사실상 파괴된 것이다.
그런데 항소심은 1심의 50년형을 27년형으로 낮췄다.
무려 23년이다.
국민들이 충격을 받는 이유는 단순하다.
23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갓 태어난 아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의 시간.
사회 초년생이 중년이 될 때까지의 시간.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길고도 중요한 구간 중 하나다.
그런데 법원은 그 23년을 덜어냈다.
그래서 국민은 묻고 있다.
피해자의 인생은 어떻게 계산했느냐고.
지능이 11세 수준으로 떨어진 한 인간의 남은 인생은 도대체 얼마의 가치로 평가된 것이냐고.
무엇보다 국민이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금액과 감형 규모의 비례성이다.
1억 원.
결코 작은 돈은 아니다.
평범한 노동자가 수년 동안 땀 흘려 일해야 모을 수 있는 큰돈이다.
그러나 동시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수십 년의 자유와 맞바꿀 수 있을 만큼 엄청난 금액도 아니다.
그런데 국민의 눈에는 이번 판결이 마치 1억 원에 23년의 형량이 거래된 것처럼 보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상식은 무너진다.
도대체 그 기준은 무엇인가.
누가 보아도 23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긴 시간을 감형할 만큼 1억 원은 어느 정도의 가치로 평가된 것인가.
국민은 알 권리가 있다.
법원은 설명해야 한다.
왜 그 정도의 감형이 가능했는지?
왜 피해자는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데 가해자는 23년을 돌려받았는지?
왜 그 결과가 정의라고 불릴 수 있는지?
그리고 많은 국민들은 더욱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판사 자신이라면 1억 원을 받고 앞으로 23년 동안 출근하라고 했을 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과연 판사 자신이라면 1억 원을 받고 23년의 자유를 포기할 수 있을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법정 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 계산법은 완전히 달라지는 것인가?
왜 국민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감각과 법원이 사용하는 가치의 기준은 이토록 멀어 보이는 것인가?
어쩌면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많은 국민들은 아직 판결문을 읽어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본 순간 이미 판결문의 내용을 짐작한다.
가해자의 반성.
가해자의 합의.
가해자의 배상.
가해자의 성장 과정.
가해자의 환경.
가해자의 사정.
국민들은 판결문을 펼치기도 전에 그 안이 무엇으로 채워져 있을지 예상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너무나 많은 사건에서 비슷한 장면을 반복해서 보아 왔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반면 피해자가 잃어버린 인생, 피해자가 평생 감당해야 할 고통, 피해자 가족들이 떠안게 된 짐은 언제나 몇 줄의 문장으로 압축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실제 판결문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사실이 아니다.
국민들이 결과를 보는 순간 "또다시 가해자의 사정을 설명하는 내용으로 가득하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사법부 신뢰의 위기를 보여준다.
신뢰받는 사법부라면 판결문을 읽기 전부터 의심받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국민들은 판결문을 읽기도 전에 결론을 예상한다.
그것이야말로 사법부가 가장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경고 신호일 것이다.
이번 판결이 비판받는 이유는 단순히 감형 때문이 아니다.
감형의 규모 때문이다.
국민은 판결문보다 숫자를 먼저 본다.
50년 -> 27년 = 감형 23년.
그리고 피해자는 평생 후유장애.
이 숫자들을 나란히 놓았을 때 과연 몇 명의 국민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법원은 종종 국민 감정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맞다.
재판은 여론조사가 아니다.
그러나 국민 상식까지 무시할 권리를 부여받은 것은 아니다.
상식은 법의 적이 아니다.
오히려 법이 도달해야 할 최소한의 기준이다.
만약 대다수 국민이 결과를 보고 "이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법원은 국민이 무지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판단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법부에 대한 신뢰다.
사법부는 군대도 없고 예산권도 없다.
오직 국민의 신뢰만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피해자의 삶이 사실상 파괴된 사건에서 수십 년의 형량이 줄어드는 모습을 국민이 반복해서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법원을 정의의 기관이 아니라 감형의 기관으로 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순간 무너지는 것은 특정 판결의 권위가 아니다.
사법부 전체에 대한 신뢰다.
이번 사건에서 국민이 분노하는 이유는 복수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피해의 무게에 비해 책임의 무게가 너무 가볍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평생 11세의 지능으로 살아가야 한다.
그 형벌은 종신형이다.
법원이 선고한 것이 아니라 범죄자가 피해자에게 내린 종신형이다.
그런데 가해자는 23년을 돌려받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국민은 묻는다.
도대체 법은 누구의 시간을 더 소중하게 계산하고 있는가.
피해자의 남은 평생인가.
아니면 가해자의 남은 형기인가.
사법부가 진지하게 답해야 할 질문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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