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스스로를 능력주의 사회라고 말한다.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실력 있는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현실의 채용 시장은 여전히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력서를 펼치는 순간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실력도, 성과도, 가능성도 아니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몇 년제인지, 학위가 어디까지인지가 먼저 평가의 기준이 된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 산업은 이러한 모순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다.
AI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으며, 학문적 배경보다 실제 구현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이 중요하다고 평가받는다.
수많은 개발자들이 대학 강의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성장한다.
오픈소스를 분석하고, 밤을 새워 서비스를 만들고, 수없이 실패하며 기술을 체득한다.
실제로 세계적인 기술 혁신 사례들 중 상당수는 정형화된 교육 과정보다 개인의 집요한 탐구와 실행력에서 시작됐다.
그런데 막상 채용 공고를 열어보면 "석사 이상 우대", "박사 필수", 심지어 "특정 대학 출신 선호" 같은 문구가 버젓이 등장한다.
물론 연구 중심 직무에서 고급 학문적 훈련이 필요한 경우는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필요한 직무인지조차 검토하지 않은 채 일종의 관성처럼 학력을 최소 조건으로 걸어버리는 문화다.
이러한 방식은 기업에도 결코 이롭지 않다.
학벌은 잠재적 능력을 간접적으로 추정하는 지표일 뿐, 실력을 증명하는 절대적 기준이 아니다.
실제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사람,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사람을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
기업은 인재를 걸러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인재를 서류 단계에서 잃고 있는지도 모른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사회적 비용이다.
청년들은 학위 취득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경쟁 속으로 내몰린다.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보다 "간판"을 하나 더 얻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산업은 빠르게 움직이는데 사람들은 스펙 경쟁에 묶여 있다.
그 사이 현장에서 실력을 쌓은 사람들은 끊임없이 "학력이 부족하다"는 벽 앞에 선다.
대한민국은 유난히 학벌을 신분처럼 다루는 경향이 강하다.
학교가 개인의 노력과 성실함, 능력 전체를 대표하는 증명서처럼 취급된다.
그러나 졸업장이 인간의 가능성을 측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
특히 AI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기술은 매년 바뀌는데 학위는 과거의 기록일 뿐이다.
기업은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느 학교를 나왔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었는가", "무엇을 해결했는가", "어떤 가치를 증명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포트폴리오와 결과물, 실제 프로젝트 경험이 종이 한 장의 학력보다 우선되어야 한다.
능력주의를 말하면서 학벌주의를 유지하는 사회는 결국 모순 위에 서 있는 사회다.
한국이 진정으로 혁신을 원한다면, 사람보다 간판을 먼저 보는 오래된 습관부터 버려야 한다.
미래 산업은 학위가 아니라 실력이 만든다.
그리고 그 실력은 교정 안에서만 탄생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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