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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시 명예회손 폐지

운영자 2026.04.24 08:55 조회 수 : 1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적 기본권이다.

특히 공적 사안에 대한 비판과 정보 공유는 시민의 알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수단이며, 권력 감시 기능을 수행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형법은 ‘사실을 적시하였더라도’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형사처벌이 가능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형법 제307조 제1항에 근거하며, 진실한 사실의 표현까지도 처벌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제는 이 조항의 존치 여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진실한 사실의 표현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할 위험이 있다.

일반적으로 허위 사실에 대한 규제는 타인의 명예 보호라는 정당한 목적을 갖지만, 진실한 사실까지 처벌하는 것은 그 범위를 넘어선다.

특히 공익적 목적을 가진 폭로, 내부 고발, 피해 사실의 공유 등이 위축될 수 있으며, 이는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과적으로 시민은 법적 리스크를 우려하여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주저하게 되는 ‘위축 효과(chilling effect)’에 직면하게 된다.

 

둘째, 이 제도가 현실에서 작동하는 방식 역시 문제적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이론상으로는 명예 보호를 위한 장치이지만, 실제로는 사회·경제적 자원이 풍부한 ‘가진 자’가 그렇지 못한 ‘없는 자’를 상대로 압박 수단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액의 소송 비용과 형사절차의 부담은 개인에게 심리적·경제적 위축을 초래하며, 결과적으로 정당한 문제 제기나 피해 사실의 공론화를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낳는다.

특히 노동, 소비자 피해, 성범죄 피해 고발 등 권력 비대칭이 존재하는 영역에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 경우 법은 약자를 보호하기보다, 오히려 침묵을 강요하는 도구로 기능하게 된다.

 

셋째, 명예 보호의 수단으로서 형사처벌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는 주로 사적 법익의 침해에 해당하며, 이에 대해서는 민사적 구제수단(예컨대 손해배상이나 정정보도 청구)로도 충분히 대응이 가능하다.

형벌권은 국가가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력인 만큼, 그 적용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형벌의 보충성 원칙’에 비추어 볼 때,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은 그 필요성과 비례성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넷째, 국제적 기준과의 괴리 문제다.

유엔 인권위원회를 비롯한 국제 인권 기구들은 지속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의 비범죄화를 권고해 왔다.

다수의 국가에서는 이미 진실한 사실의 적시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거나, 명예훼손 자체를 비범죄화하는 방향으로 입법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비추어 볼 때, 현행 제도는 국제 인권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

 

다섯째, 공익성 판단 기준의 불명확성이다.

현행 법제는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그 판단 기준은 상당히 추상적이다.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법원의 해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으며, 이는 법적 예측 가능성을 저하시킨다.

결국 표현 행위자는 사전에 자신의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될지 여부를 명확히 판단하기 어렵다.

 

여섯째, 폭력 및 범죄행위에 대한 사실 적시의 예외 필요성이다.

최근 이른바 ‘학폭(학교폭력) 폭로’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는 피해 사실의 공론화 필요성이 널리 인정되고 있으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도 그 공익성이 적극적으로 고려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폭력 피해의 특성상 은폐 가능성이 높고, 피해자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기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최소한 정신적·육체적 폭력행위 및 각종 범죄행위에 관한 사실 적시는 원칙적으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정책적 선택이 아니라, 피해자 보호와 2차 가해 방지, 그리고 사회적 경각심 제고라는 공익을 실현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다.

설령 전면적인 폐지에 이르지 않더라도, 적어도 이러한 영역에 대해서는 명확한 위법성 조각 사유를 입법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

 

물론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폐지에 대해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개인의 사생활 보호와 인격권 보장은 여전히 중요한 가치이며, 무분별한 폭로로 인한 피해를 방지할 필요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형사처벌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민사적 구제수단과 개인정보 보호 법제의 강화, 그리고 언론윤리의 확립 등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

 

결론적으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표현의 자유와 명예 보호라는 두 가치 간의 균형을 형사처벌이라는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였으나,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그 한계가 명확하다.

진실한 사실의 표현까지 범죄로 규율하는 구조는 민주사회에서 요구되는 자유로운 정보 흐름과 상충한다.

더 나아가 현실에서는 권력 불균형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적지 않다.

이제는 형사법의 영역에서 이를 제거하거나 최소한 그 적용 범위를 대폭 축소하고, 특히 폭력 및 범죄행위에 대한 사실 적시를 명확히 보호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재설계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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